우리 눈은 칼라 이미지에 익숙하다.
사물이나 어떤 행위가 칼라 이미지로 우리 기억 속에 저장된 것도 많다.
약국 표시인 붉은 십자가, 붉은색 우체통, 위험 표지판, 육체적인 사랑,
피, 격렬한 싸움, 공산주의, 불자동차,,,,,,
우리 뇌리 속에 저장된 이런 기존 인식들이 너무 강열하다. 그러므로
채색된 이미지를 보면 우리 기억을 끄집어 내어 그 이미지를 해석하기도 한다.
이미 객관적으로 코드화되어 있는 '색채의 의미'는 '색의 진실'이 아니다.
환경에 따라, 사회정서에 따라, 혹은 정치적 이념에 의해,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후천적으로 인식되어진 의미다.
그럼, 색의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환경이, 상황이 어떻게 변하던지 그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면, 그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색채에 대한 '나'와 '너'의 본질적 정서을 이해하는 척도가 아닐까?
오래 전에 최초의 사진 공부 스승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에
'몬드리안이 색을 공부하다가 막혀버리고 방황하다가 흑백과 회색으로
색의 본질을 깨우치고, 지금의 색채구성 작업을 시작했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흑백과 회색으로 색채의 본질을
알게 되었지?' 라는 의문도 가져보지 못했다. 이런 의문을 최초로 가진 시점은
2001년 10월쯤으로 기억된다. 어느 일요일 오후 올림픽공원으로 가서
벤치에 누워 황색으로 곱게 물든 감나무 잎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황색이 사라져버리고 눈부신 빛 속에 회색점들이 아롱거렸다.
'어?! 왜 색이 사라지지?' 나는 당혹감에 일어나 눈을 감았다가 뜬고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았다. 눈에 이상이 온 줄로 알았다. 그러나
멀쩡하다. '왜 색이 사라지지?!' 나는 다시 누워 먼저처럼 감나무 잎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보였던 황색이 조금 지나자 다시 사라졌다.
이때, 몬드리안의 색공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몬드리안의 색 공부는 색을 빛으로 이해하고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색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정도
밖에는 모른다. 채도, 명도도 사실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사진이든 모든 이론을 무시하고, 거의 본능적으로만
접근하고 즐기는 스타일이다.
이때부터 그 동안 배웠던 칼라 사진 공부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빛의 색에 대해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되질 않았던 '물체가 가진 색은 빛의 파장으로 우리 눈에 보여진다.
우리가 인위적인 색-물감이라고 하는 것도 빛 그 자체와 같다.'라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색을 빛으로 이해하고나자 나는 다시 흑백사진이 하고 싶어졌다.
몬드리안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물의 색, 내 뇌리 속에
깊히 저장된, '강요된, 혹은 타성적으로 기억된 색의 의미'를
버리고 존재 그 본연의 현상에 접근하고 싶어서다.
흑백사진을 추상적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
칼라의 세계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는 다른 측면에서 흑백사진을 생각한다.
흑백사진은 빛의 본질을 훼손시킨 사건이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색채의 은총'을 버리고, 마치 인간 스스로 창조한 빛인양
흑백사진을 만들었고, 그것을 지금도 깊이 즐거워하고 있다.
이 사건은 마치 무신론적 실존주의 소설가인 까뮤가 이방인의 뫼르소를 통해 울부짖은.
혹은 짜라투스트라처럼 인간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자 몸부림치던
인간이 드디어 그것을 확보한 것인양 획기적인 사건이다.
내가 흑백사진으로 돌아가고 싶어진 것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내게 헤르만 헷세의 '나르찌스 운트 골드문트'에 등장하는 '골드문트'의 피가 흐르고 있나?
더 자세한 내용은
http://www.photoyoon.com
해서 요즘, 모든 칼라를 회색계조로 전환시키는 시각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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